2022.09.27 ~ 2022.10.07

 

- 책 전체적으로 대화체 방식이라서 요약하기가 쉽지 않다.

 

33p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과거의 '원인'이 아니라 현재의 '목적'을 본다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목적론' 이라고 한다네

 

36p

아들러 심리학은 트라우마를 명백히 부장하네

"어떠한 경험도 그 자체는 성공의 원인도 실패의 원인도 아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받은 충격-즉 트라우마-으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 안에서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네. 인생이란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걸세.

 

우리는 모두 어떠한 '목적'을 따라 살고 있네. 그것이 목적론이지.

 

41p

자네는 '화가 나서 큰소리를 낸 것' 이 아닐세. 그저 '큰소리를 내기 위해 화를 낸 것' 이지. 다시말해 큰소리를 내겠다는 목적을 이루기위해 분노라는 감정을 지어낸 걸세.

 

분노란 언제든 넣었다 빼서 쓸수 있는 '도구'라네. 전화가 오면 순식간에 집어넣었다가 전화를 끊으면 다시 꺼낼수 있는.

 

46p

인간이 변할수 있는 존재라고 한다면 원인론에 근거한 가치관은 있을 수 없다, 그리니 자연히 목적론에 입각해서 생각할 수 밖에 없다고 말일세.

 

50p

자네는 Y처럼 더 밝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거로군?

자네는 왜 Y처럼 되고 싶은거지? 그 '목적'은 뭘까?

그친구처럼 되면 행복할 것 같다. 그말은 자네는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거로군?

 

자네는 Y가 아니야. 자네는 '자네'로 살면 되는 걸세.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자네가 Y나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은 것은 '무엇이 주어졌는가' 에만 주목하기 때문일세. 그러지 말고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에 주목하게나.

 

지금 자네가 불행한 것은 자네 손으로 '불행한 상태'를 선택했기 때문일세.

'불행한 상태'를 자신에게 '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지

 

생활양식(life style)

그 사람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그리고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의미 부여 방식'을 집약시킨 개념

좁게는 성격, 넓게는 세계관, 인생관까지 포함하는 말

인생을 사는 방식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생활양식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본다네

대체 언제 선택했다는 건가요?

대락 10살 전후라는 것이 아들러 심리학의 견해이지

 

만약 생활양식이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면 다시 선택하는 것도 가능할 테지.

자네는 바꾸지 못하는 게 아니야. 인간은 언제든, 어떤 환경에 있든 변할 수 있어. 자네가 변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변하지 않겠다' 고 결심했기 때문이네.

 

왜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겠어요?

조금 불편하고 부자연스럽긴 해도, 지금의 생활양식에 익숙해져서 이대로 변하지 않고 사는 것이 더 편하니까. '이대로의 나' 로 살아간다면 눈앞에 닥친 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리고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날지 경험을 통해 추측할 수 있어.

 

하지만 새로운 생활양식을 선택하면 새로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눈앞의 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몰라.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서 불안한 삶을 살게 되지. 더 힘들고 더 불행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 즉 인간은 이런저런 불만이 있더라도 '이대로의 나' 로 사는 편이 편하고 안심되는 거지.

 

65p

어떻게 하면 생활양식을 바꿀수 있는가

지금의 생활양식을 버리겠다고 결심하는 걸세.

"만약~였더라면" 이라고 하는 가능성 속에서 사는 동안에는 절대 변할 수가 없어. 왜냐면 자네는 변하지 않을 핑계로 "만약 Y 처럼 될 수 있다면" 이라고 말한거니까.

 

내가 아는 젊은 친구 중에 소설가를 꿈꾸면서도 도무지 글을 한줄도 쓰지 못하는 이가 있네. 일하느라 바빠서 소설 쓸 시간이 없고 그러다 보니 원고를 완성하지 못해서 문학상에 응모할 여력도 없다는 거야. 과연 그럴까? 사실은 응모하지 않음으로써 '할 수 있다' 는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은거라네. 남의 평가를 받고 싶지도 않고, 더욱이 졸작을 써서 냈다가 낙선하게 되는 현실에 마주치고 싶지 않은 거지.

아마 그는 앞으로 5년, 10년이 지나면 "이제는 젊지 않으니까" 혹은 "가정이 있어서" 라는 다른 핑계를 대기 시작하겠지.

문학상에 응모했다가 떨어지면 좀 어떤가? 그걸 계기로 더 성장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길을 찾으면 되지. 어쨌거나 시도를 해야 앞으로 나아갈수가 있다네. 지금의 생활양식을 바꾼다는 것은 그런거야. 시도하지 않으면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어.

 

67p

아들러의 목적론은 "지금까지의 인생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앞으로의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라고 말해주는 거지.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지금, 여기' 를 사는 자네라고 말일세.

 

78p

내가 할수 있는 일이란 일단 '지금의 나' 를 받아들이고,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갖게 하는 것이라네. (용기부여)

 

이제는 알았겠지. 왜 자네가 자기 자신을 싫어하는지, 왜 단점에만 집중하며 스스로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는지. 그것은 자네가 남에게 미움을 사고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받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기 때문일세.

자네는 남에게 부정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네.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고, 거절당하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는 것을 무서워하지. 그런 상황에 휘말리느니 처음부터 아무와도 관계를 맺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걸세. 즉 자네의 '목적'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것' 이라네.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해. 인간관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크든 작든 상처를 받게 되어 있고, 자네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되지.

 

고독을 느끼는 것은 자네가 혼자라서가 아닐세. 자네를 둘러싼 타인, 사회, 공동체가 있고, 이러한 것들로부터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에 고독한 거지.

 

"인간의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  - 아들러

 

85p

열등감 - 가치가 더 적은 느낌

즉, 열등감이란 자신에 대한 가치판단과 관련된 말이지

 

87p

그친구는 이렇게 말했네 "키는 커서 뭐 하려고? 너는 사람을 편하게 하는 재능이 있잖아" 생각해보니 그렇더군. 체격이 크고 우락부락한 남자는 그 자체로 위압감을 주지. 하지만 나처럼 체구가 작으면 경계심을 풀지.

즉 가치전환을 하게 된 걸세.

그 키에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 어떤 가치를 주느냐 하는 점이지.

 

열등감은 어디까지나 타인과의 비교 - 다시말해 인간관계 - 를 통해 만들어낸 주관적인 감정이었네

우리를 괴롭히는 열등감은 '객관적 사실' 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 이다.

내 키를 장점으로 볼 것인가, 단점으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은 모두 주관에 달린 문제라서 나는 어느 쪽이나 선택할 수 있지.

 

그렇다면 대체 가치란 무엇일까?

가치란 사회적인 맥락에서 성립하는 거라네.

가치의 문제도 최종적으로는 인간관계로 환원되는 거지.

 

 

91p

인간은 왜 열등감을 느끼는 걸까?

인간은 무기력한 존재로 태어나서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보편적인 욕구를 갖고 있지. 아들러는 이를 '우월성 추구' 라고 했네.

(우월성 추구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 열등감?)

 

아들러는 "우월성 추구도 열등감도 병이 아니라 건강하고 정상적인 노력과 성장을 하기 위한 자극이다" 라고 말했네. 열등감도 제대로만 발현하면 노력과 성장의 촉진제가 되는거지.

 

열등 콤플렉스

자신의 열등감의 변명거리로 삼기 시작한 상태

 

나는 학력이 낮다, 그러니 남보다 몇 배 더 노력하자 - 열등감

나는 학력이 낮아서 성공할 수 없다 - 열등 콤플렉스

나는 못생겨서 결혼을 할 수가 없다 - 열등 콤플렉스

 

가령 자네가 '나는 학력이 낮아서 성공할수 없다'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학력이 낮아서 성공할수 없는 것이 아니라 성공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봐야겠지.

간단히 말해 한 발 앞으로 내미는 것이 무서운 거지.

현실적인 노력을 하고 싶지 않다. 지금 누리고 있는 즐거움 - 예를들면 놀거나 취미를 즐기는 시간 - 을 희생해서까지 변하고 싶지 않다. 즉 생활양식을 바꿀 '용기' 가 없는 거라네. 다소 불만스럽고 부자연스럽지만 지금 이대로가 더 편한거지.

 

96p

 

자랑하는 사람은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

자신의 열등 콤플렉스를 말이나 태도로 밝히는 사람, "A라서 B를 할 수 없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A만 아니면 나는 유능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셈이지.

 

모자란 부분을 어떻게 채울것인가

건전한 형태 - 노력과 성장을 통해 채움. 학문에 힘쓰거나 연습에 매진하거나 일에 열정을 쏟는다거나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 - 열등콤플렉스에 빠짐 -> 우월콤플렉스로 발전

 

우월콤플렉스

마치 자신이 우월한 것처럼 행동하며 '거짓 우월성' 에 빠지는 것

예) 자신이 권력자와 친하다는 것을 어필, 경력을 속이거나 옷 장신구 등 브랜드 제품 과시 등

'나'와 권위를 연결시킴으로써 마치 '나'라는 사람이 우월한 것처럼 꾸미는 것

 

아들러도 분명히 지적했지. "만약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열등감을 느끼는 것에 불과하다."

 

불행자랑

성장과정에서 자신이 겪은 불행을 마치 뽐내듯 말하는 사람, 타인이 위로하거나 변화를 권하면 "너는 내심정이 어떤지 몰라" 하면서 도움의 손길을 뿌리치는 사람

불행한 것을 특별하다고 여기고, 불행함을 내세워 남보다 위에 서려 하지.

불행을 무기로 상대방을 지배하려고 해.

아들러 "오늘날 연약함은 매우 강한 권력을 지닌다"

 

'우월성 추구'란 자신의 발을 한발 앞으로 내디디려는 의지를 말하는 거지, 남보다 더 높은 곳으로 가려고 경쟁하려는 의사가 아닐세.

 

건전한 열등감이란 타인과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나' 와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라네.

 

우리가 걷는 것은 누군가와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지금의 나보다 앞서 나가려는 것이야말로 가치가 있다네.

 

인간관계의 중심에 '경쟁'이 있으면 인간은 영영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행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경쟁의 끝에는 승자와 패자만 남으니까.

 

경쟁이나 승패를 의식 -> 열등감 -> 열등콤플렉스, 우월콤플렉스

언제부터인가 자네를 제외한 모든 사람을, 더 나아가서는 세계를 '적'으로 느끼게 된다네. -> 이세계는 무서운 장소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고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까닭은, 그들이 늘 경쟁 속에서 살기 때문이지. 그들에게는 세계가 적으로 넘쳐나는 위험한 장소니까.

 

하지만 실제로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자네'를 주시하고 있을까?

"네 얼굴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너뿐이란다"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보지 않았다면 그 사람들은 어떤 존재가 되었을까?

더 가까운 '친구' 가 되었을 걸세.

 

인간관계를 경쟁으로 바라보고 타인의 행복을 '나의 패배'로 여기기 때문에 축복하지 못한 걸세

 

만약 면전에서 욕을 먹었다면 그 사람이 숨겨놓은 '목적'이 뭔지 생각할 걸세. 상대의 언동으로 진짜로 화가 났을 때는, 상대가 '권력투쟁' 을 위해 싸움을 거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권력투쟁

목적이 싸우는 것 자체인 것. 이기고 싶은 것. 자신의 힘을 증명하고 싶은 것.

비난하고 도발하고 권력투쟁을 함으로써 평소 못마땅했던 상대를 굴복시키고 싶은 것임. 여기서 자네가 화를 내면 상대가 의도한 대로 두 사람은 권력투쟁에 돌입하지. 그러니 어떠한 도발에도 응해서는 안 돼.

 

권력투쟁에서 이겼을 경우, 싸움에서 진 상대는 바로 다음 단계에 돌입할 걸세. -> 복수

일단은 물러나지만 상대는 다른 장소, 다른 형태로 뭔가 복수를 계획하고 보복에 나선다네.

 

120p

인신공격을 받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참는다는 발상은 자네가 아직 권력투쟁에 사로잡혀 있다는 증거일세. 상대가 싸움을 걸어오면, 그것이 권력투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서둘러 싸움에서 물러나게. 상대의 도발에 넘어가지 말게.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그뿐이네.

 

분노를 어떻게 제어하라는 겁니까?

분노라는 감정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배우게. 분노란 어차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며 도구니까.

화를 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분노라는 도구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는 걸세. 화를 잘내는 사람은 참을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분노 이외의 유용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걸세.

 

아무리 자신이 옳다고 여겨도 그것을 이유로 상대를 비난하지는 말게.

인간관계에서 '나는 옳다' 고 확신하는 순간, 권력투쟁에 발을 들이게 되네.

나는 옳다 = 상대는 틀렸다

 

아들러는 인간의 행동과 심리 두가지 측면에서 아주 분명한 목표를 제시했지.

 

행동목표
1) 자랍할 것
2)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


위 행동을 뒷받침하는 심리적 목표
1) 내게는 능력이 있다는 의식을 갖는 것
2) 사람들은 내 친구라는 의식을 갖는 것

 

126p

이러한 목표는 아들러가 제시한 '인생의 과제' 를 직시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네.

 

인생의 과제란?

인간관계를 일의 과제, 교우의 과제, 사랑의 과제 라는 3가지로 나누고 이를 합쳐 '인생의 과제'라고 불렀네

 

148p

대체 인간관계의 무엇이 우리의 자유를 빼앗는 것일까?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타인에게 인정받기 원하는 마음을 부정한다네.

대체 왜 인간은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걸까? 대개의 경우 그것은 상벌교육의 영향이라네.

 

자네는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네. 나도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타인의 기대 같은 것은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는 말일세.

 

그러면 결국 자기 멋대로 하라는 겁니까?

-> 과제의 분리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 라는 관점에서 생각한다네.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네.

타인의 과제에는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 그것 뿐일세.

모든 인간관계의 트러블은 대부분 타인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하는 것에 의해 발생한다네.

 

누구의 과제인지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네.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인가?' 를 생각하게.

아들러 심리학은 방임주의를 권하는게 아닐세.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지켜보는 것. 공부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이 본인의 과제라는 것을 알리고, 만약 본인이 공부하고 싶을때는 언제든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사를 전하는 걸세. 단, 아이의 과제에는 함부로 침범하지 말아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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